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화가들의 절규 (문단 편집) === 헛소문 전파 === >첨부터 만화계가 이런 건 아냐.. '''불과 몇 년 전부터 이러는 건데.. 비러먹을 정치하는 양반들이.. 실직자 구제한답시고 도서대여점이란 걸 만들었잖아? 그 때부터 이런 거야..''' >만화가들의 절규 1 이 문장은 당시 널리 퍼진 헛소문에 기인한 이야기를 사실 확인 없이 전파하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. 당시 정부에서 실직자를 구제하기 위해 특정 자영업 형태를 허용하거나 장려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. 도서대여점을 통해 몇 년 사이에 극적으로 변화된 만화시장을 강조하기 위한 문장인 셈인데,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. 90년대의 잡지-단행본 만화시장은 1년이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. 드래곤볼, 슬램덩크를 위시한 일본 만화의 유통부터 시작해서 잇따른 주간만화잡지의 창간, 그 과정에서 자리잡은 것처럼 보였던 잡지-단행본 체계는 90년대 대여점의 등장과 시기를 맞추어 그 형태가 또 변화했으며 그 변화한 모습은 기존에 존재하던 대본소 시장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. 이런 변화는 대본소 체계 밖에 존재하던 잡지 연재 작가들에게 공장식 대량생산을 하던지, 절필을 하던지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. 이는 실제 현상보다 과장되게 받아들인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그만큼 당시의 시장 변화가 작가들에게는 충격적이었던 셈이다. 위의 발언은 대본소 체제를 겪고 그 시기까지 포함한 이야기가 아니라 90년대 이후 잡지연재만을 하던 작가가 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면 그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. 문제는 90년대의 도서대여점이 생겨난 원인을 정부까지 거슬러서 찾고 있는데, 도서대여점이라는 업종 자체가 완전히 새롭거나 금지된 걸 풀어줬다거나 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. 유사하게는 이미 [[도서대여점]] 이전부터 [[대본소]] 체계가 있었다. 아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책을 전문적으로 빌려주는 곳은 세책점이라고 하여 [[조선]]시대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다.[* 세책점에서 쓰던 판본을 세책본이라고 하며 시스템도 현대와 거의 같았다.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책을 빌리기 전에 담보를 맡긴다는 것 정도.] 더구나 대본소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이미 '''1950년대'''에 성행하던 대본소에 비해[* [[검정고무신]] 등 이 시대를 다룬 매체에서 흔히 등장하며 심지어 만화뿐만 아니라 돈 받고 TV를 보여주기도 했다.] 100% 만화로만 구성된 만화 전문 잡지책은 '''1982년'''에 발행되기 시작한 월간 [[보물섬(만화잡지)|보물섬]]을 시초로 봐야 한다.[* 보물섬이 발행되기 훨씬 이전인 1950년대에도 잡지-단행본 시스템이 정착된 바 있었지만 1950년대 말부터 쇠락하여 1960년대에 사장되었다. 당시 일부 소년잡지나 주부잡지 등에 만화를 싣고 거기서 연재된 만화들을 단행본으로 발행하기는 했지만 단행본을 살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이 적었고 인식도 좋지 않았다.] 결국 잡지나 단행본 시스템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거나 시기가 늦은 셈이고 그 시기를 관통하여 꾸준히 유지되어 시장을 형성한 것은 결국 만화방이었던 셈이다. 이렇듯 만화 대여는 한국의 만화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며 도서대여업이라는 개념은 [[IMF]]를 기점으로 실직자 구제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. 단, 분명 여기에서 언급되는 '도서대여점'이라는 영업형태로 유통되는 품목과 세부적 모습이 '대본소 만화방'과 확연히 구분되는 만큼 위 글에서는 대본소와 대본소 시장이 아닌, 1990년대에 새로 생겨난 도서대여점과 그 시장을 지칭하는 것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. 실제로 도서대여점이 최초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때는 1992년이며 1994년에 도서대여점의 숫자는 6,000여 지점에 달했다. [[1997년 외환 위기]]는 1997년에서 2001년인데, 1998년에 11223여 지점으로 파악됐던 도서대여점은 1999년부터는 [[PC방]]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그 수가 줄어들더니 2000년에는 다시 6200여 지점으로 축소되었다.[* 당시에 명예퇴직 당한 자영업자의 증가로 인해 다방면의 자영업종이 전체적으로 상승한 만큼 명예퇴직 후 도서대여점을 창업한 업주를 만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.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여점의 숫자가 감소한 현상에 PC방도 그 역할을 했겠지만 그보다는 10년 가까이 대여료가 고정이거나 오히려 저렴해졌다는 점에서, 과도한 경쟁에 의한 수익성 악화가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. 거기에 [[대여점 책임론]] 문서를 살펴보면 한창 양판소 문제가 확대된 시점에는 최대 20000여 지점의 대여점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. 그리고 치킨집이 이렇게 난립함에도 치킨 가격은 계속계속 올랐다는 점에 비춰 보자면 수익성 악화는 과도한 경쟁 탓만 할 수 없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경제사정 악화에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.] 즉, 출판사에서 비용절감을 한답시고 일본 만화를 값싸게 박라다매하는 방식으로 수입해대는 출판사를 비판해야 했지만 이 부분을 제대로 지적하기보다는 허수아비를 치는 격으로 문제를 지적한 점도 있었다. 하나 더 말하자면 이 시기에는 왠지 이런 식으로 낭설을 유포하며 정부나 정치, 계층을 비난하는 글이 유독 많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